기생충의 계단은 누구에게도 같은 방향이 아니었습니다

반지하 창문 앞에서 술에 취한 사람이 비틀거리던 장면은 처음 볼 때 불편한 농담처럼 지나갔습니다. 기우와 기정은 익숙하다는 듯 창밖을 바라보고, 기택은 와이파이 신호가 잡히는 자리를 찾죠. 다시 《기생충》을 보니 그 작은 창문이 자꾸 마음에 걸렸어요. 바깥을 볼 수는 있지만 사람들의 발목과 거리의 먼지가 먼저 들어오는 높이. 김 가족이 세상을 바라보는 위치가 이미 그 안에 담겨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지하실의 비밀과 갑자기 뒤집히는 전개에 정신을 빼앗겼습니다. 누가 누구를 속이는지 따라가다 보면 영화가 너무 빠르게 다른 얼굴을 보여줬거든요. 이번에는 반전보다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계단이 더 선명했습니다.

박 사장의 집으로 향할 때 김 가족은 계속 위로 올라갑니다. 폭우가 쏟아진 밤 자기 집으로 돌아갈 때는 반대로 끝없이 아래로 내려가죠. 같은 서울에 살지만 누구에게는 비가 정원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날씨였고, 누구에게는 집 안의 모든 것을 떠내려 보내는 재난이었습니다.

 기생충 포스터

계단을 오를 때마다 달라진 말투

최우식이 연기한 기우는 친구 민혁에게 과외 자리를 소개받은 뒤 박 사장의 집으로 향합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말을 고르지만 연교가 자신의 설명을 믿기 시작하자 목소리에 조금씩 여유가 생겨요. 대학생인 척하는 상황에는 긴장이 남아 있지만, 누군가가 자신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경험이 싫지만은 않은 듯했습니다.

박소담이 연기한 기정은 더 빠르게 상황에 적응합니다. 현관에 들어가기 전의 기정과 ‘제시카’가 된 뒤의 얼굴을 거의 끊어놓듯 바꾸죠. 상대와 짧게 눈을 맞추고, 연교가 듣고 싶어 하는 확신을 먼저 건넵니다.

기정은 단순히 거짓말을 잘하는 인물만은 아니었어요. 상대가 무엇을 불안해하고 어떤 말을 원하고 있는지 빠르게 알아차립니다. 그 능력이 다른 환경에서는 제대로 된 일과 기회로 이어질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 웃다가도 조금 씁쓸했습니다.

기택과 충숙까지 박 사장의 집에 들어오면서 김 가족은 잠시 자신들의 자리를 찾은 것처럼 보입니다. 반지하에서는 서로 짜증을 내던 사람들이 넓은 집 안에서는 손발을 정확히 맞추죠. 봉준호 감독은 이 과정을 빠르고 경쾌하게 이어 붙이고, 정재일의 음악은 가족의 거짓말을 하나의 완성된 작업처럼 들리게 합니다.

처음 볼 때는 그 리듬이 통쾌했어요. 다시 보니 네 사람이 이렇게까지 호흡이 잘 맞는데도 함께할 수 있는 일이 속임수뿐이라는 사실이 먼저 들어왔습니다. 능력이 없어서 가난한 사람들이라기보다, 가진 능력을 정상적인 기회로 연결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처럼 보였죠.

기생충-1

냄새는 문보다 먼저 선을 그었습니다

송강호가 연기한 기택은 박 사장의 말을 들을 때마다 웃는 표정을 유지합니다. 운전기사로서 지켜야 할 거리를 알고, 상대가 불편해하지 않을 정도로 대화를 이어가죠. 하지만 냄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입가가 아주 조금 굳습니다.

박 사장은 노골적으로 기택을 모욕하는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습니다. 자신은 선을 넘는 사람을 싫어한다고 말하고, 기택에게서 나는 냄새를 오래된 무말랭이나 지하철에서 맡을 법한 냄새에 빗대죠. 말투는 조용하지만 그가 말하는 선의 안쪽과 바깥쪽에 누가 있는지는 너무 분명했습니다.

냄새는 옷을 바꾸거나 준비한 대사를 외운다고 쉽게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우는 과외 선생이 되고 기정은 미술치료 전문가가 되지만, 가족이 함께 살아온 반지하의 습기까지 지울 수는 없었죠.

다송이가 네 사람에게서 비슷한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순간, 가족이 공들여 만든 역할이 잠시 흔들립니다. 각자 전혀 다른 사람인 척했지만 몸에 밴 생활의 흔적은 이미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었어요. 냄새는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고도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드러내는 표식이 됩니다.

소파 아래 숨은 기택이 박 사장 부부의 대화를 듣는 장면은 다시 봐도 숨이 막힙니다. 그는 바로 옆에 있지만 두 사람에게는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과 다르지 않죠. 박 사장은 운전기사의 냄새에 관해 말하고, 기택은 몸을 움직이지도 못한 채 그 이야기를 전부 듣습니다.

송강호는 분노를 크게 드러내지 않습니다. 눈을 천천히 움직이고 입술에 들어간 힘을 유지할 뿐이죠. 그 얼굴 안에는 모욕과 체념, 당장 이 집을 나갈 수도 없다는 현실이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어느 감정이 더 큰지 쉽게 나눌 수 없었어요.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밀어냈습니다

문광이 다시 초인종을 누른 뒤부터 영화의 공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정은이 연기한 문광은 비에 젖은 얼굴로 집 안에 잠시 들어가게 해달라고 부탁하죠. 지하 공간의 문이 열리면서 박 사장의 집에도 김 가족이 몰랐던 더 낮은 세계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문광 부부와 김 가족은 같은 사람들은 아닙니다. 처한 상황과 살아온 방식에도 차이가 있죠. 하지만 박 사장 가족의 공간에 의존하지 않으면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는 서로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 상대를 발견한 뒤 연대하기보다 먼저 밀어내려 한다는 사실이 더 씁쓸했어요.

위로 올라갈 자리가 하나뿐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자신보다 높은 곳의 사람보다 바로 아래와 옆에 있는 사람을 먼저 경계합니다. 김 가족은 문광 부부 때문에 지금 얻은 자리를 잃을까 두려워하고, 문광은 자신이 가진 비밀을 지키기 위해 김 가족의 거짓말을 이용하려 하죠. 같은 집 아래에서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이 서로를 더 낮은 곳으로 끌어내립니다.

영화 속 계단은 단순히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나누는 장치로만 머물지 않습니다. 박 사장의 집 안에도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있고, 그 끝에는 오랫동안 집주인에게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살고 있었죠. 누군가에게 꼭대기처럼 보이는 공간에도 또 다른 바닥이 숨어 있었습니다.

기생충-2

비가 온 뒤 누구의 집이 사라졌는가

폭우가 내리던 밤, 김 가족이 박 사장의 집에서 빠져나와 계단을 내려가는 장면은 이번에 가장 오래 남았습니다. 골목을 지나고 육교 아래로 내려가며 더 낮은 곳으로 향할수록 물은 점점 불어나죠. 한참을 내려가도 반지하 집은 좀처럼 나오지 않습니다.

박 사장 가족에게 비는 캠핑을 취소하게 만든 불편한 날씨였습니다. 반면 김 가족의 집에서는 변기물이 솟구치고 옷과 사진, 생활에 필요했던 물건들이 물에 떠다닙니다. 같은 날 내린 비지만 높은 곳과 낮은 곳에 도착했을 때 전혀 다른 사건이 됩니다.

장혜진이 연기한 충숙이 물속에서 필요한 물건을 찾는 동안 누구도 감정을 정리할 여유가 없습니다. 슬퍼하거나 화를 내기 전에 일단 건져야 하고, 집 밖으로 빠져나가야 하죠. 재난을 겪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상황을 이해할 시간조차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기정이 넘치는 변기 위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장면도 이상할 만큼 차분합니다. 집 안의 모든 것이 망가지는 가운데 그 자리는 역류하는 오물을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는 곳이죠. 비극적인데 화면은 우스꽝스럽고, 웃기다고 하기에는 너무 처참했습니다.

《기생충》이 오래 남는 이유가 이런 순간에 있는 것 같아요. 한 가지 감정으로 장면을 정리하려 하면 바로 다른 감정이 끼어듭니다. 웃다가 불편해지고, 불쌍하게 바라보다가 인물들의 잔인한 선택을 발견하게 되죠.

다음 날 박 사장의 정원은 비가 씻어낸 듯 맑습니다. 연교에게 폭우는 미세먼지를 없애고 공기를 깨끗하게 만든 반가운 날씨였어요. 김 가족에게는 전날까지 이어온 생활이 사라진 다음 날의 아침이었습니다.

같은 비를 두고 이렇게 다른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잔인했습니다. 기택은 운전석에서 연교의 말을 들으며 특별한 대답을 하지 않죠. 이미 냄새와 선에 관한 말을 여러 차례 삼킨 뒤라 그 침묵이 더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마지막 계획도 계단처럼 보였습니다

마지막의 기우는 돈을 벌어 박 사장의 집을 사고, 지하에 숨어 있는 아버지를 데리고 나오겠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처음 봤을 때는 언젠가 그 계획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이 조금은 남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영화는 기우가 실제로 집을 산 현재보다, 그것을 꿈꾸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 뒤 다시 반지하의 현실로 돌아옵니다. 이제는 그 계획이 확실한 미래라기보다 지하의 아버지에게 닿기 위해 기우가 머릿속에 만든 또 하나의 계단처럼 보였어요.

그는 열심히 돈을 벌면 언젠가 위로 올라갈 수 있다고 믿으려 합니다. 하지만 그 집을 살 만큼의 돈을 모으는 일이 실제로 가능한지는 알 수 없죠. 오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데도 다른 길을 떠올리기 어려워 계속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계단입니다.

《기생충》에는 위로 올라가려는 사람이 많지만 완전히 도착한 사람은 없는 듯했습니다. 박 사장의 집에 들어간 김 가족도 그곳의 주인이 되지는 못했고, 반지하보다 낮은 곳에는 오랫동안 이름 없이 살아온 사람이 있었죠. 높은 집에 살던 박 사장 가족 역시 자신들의 발밑에 어떤 삶이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떠오른 것은 누가 누구에게 기생했는가에 대한 하나의 답이 아니었습니다. 서로의 노동과 돈, 공간에 기대어 살면서도 상대가 어떤 높이에 있는지는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어요.

누군가에게 계단은 집으로 들어가는 평범한 통로였고, 누군가에게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올라가야 하는 길이었습니다. 폭우가 내린 밤에는 생활이 무너진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끝없이 내려가야 하는 길이 되었고, 마지막에는 도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한 계획으로 남았죠.

《기생충》의 계단이 누구에게도 같은 방향이 아니었던 이유는 높고 낮음이 건물의 구조로만 끝나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같은 비와 같은 냄새, 같은 도시를 살아가면서도 사람들은 자신이 서 있는 높이에 따라 전혀 다른 현실을 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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