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치가 사람들 앞에서 도술을 부릴 때마다 얼굴이 먼저 밝아졌습니다. 누군가를 구했다는 안도감보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곳에 모였다는 즐거움에 가까워 보였죠. 처음 《전우치》를 봤을 때는 강동원이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서울을 뛰어다니는 모습만 기억했습니다. 다시 떠올리니 전우치는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보다, 재미없는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신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더 큰 사람이었습니다.
그 점이 이상하게 밉지 않았어요. 그는 훌륭한 도사가 되기 위해 묵묵히 수련하는 인물도 아니고, 처음부터 정의를 지키겠다고 나서는 영웅도 아닙니다. 스승의 충고를 흘려듣고 도술을 자랑하며,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 사람인지 보여주려 하죠.
그러다 스승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초랭이와 함께 그림족자에 봉인됩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요괴를 잡기 위해 현대의 서울로 불려 나오지만, 달라진 세상 앞에서도 전우치의 성격은 조금도 차분해지지 않았어요. 오히려 더 크고 화려해진 무대를 발견한 사람처럼 들떠 보였습니다.

족자 밖의 서울이 먼저 재미있었던 사람
강동원이 연기한 전우치는 현대에 도착한 뒤 오래 당황하지 않습니다. 높은 건물과 자동차, 번쩍이는 간판을 보면서도 겁먹기보다 새로운 도술의 무대라도 발견한 듯 주변을 둘러보죠. 요괴를 잡으라고 불려 나왔지만 관심은 자꾸 다른 곳으로 샙니다.
사람들 앞에 멋있게 등장하고, 자기 능력을 과시하며, 서인경의 시선을 붙잡는 일이 요괴를 쫓는 일만큼 중요해 보여요. 위험한 상황에서도 어떤 자세로 등장할지 먼저 생각하는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세상을 구하러 온 도사라기보다 오랫동안 갇혀 있다가 갑자기 넓은 놀이터에 풀려난 사람에 가까웠죠.
이런 태도는 자칫 가볍고 철없게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강동원은 전우치의 허세를 완전히 미워하기 어렵게 만들어요. 자신감이 넘치다가도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얼굴부터 흔들리고, 누군가의 칭찬을 기대할 때는 어린아이처럼 눈빛이 달라집니다.
도술을 쓰는 손놀림은 능숙하지만 그 힘을 어디에 사용해야 하는지는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어요. 재능은 이미 충분한데 그 재능을 책임지는 마음만 뒤늦게 따라오는 셈이었습니다.
유해진이 연기한 초랭이는 전우치 곁에서 계속 현실을 확인해주는 존재입니다. 전우치가 사고를 치면 투덜거리며 수습하려 하지만, 재미있는 일이 생기면 누구보다 빠르게 따라붙죠. 충성심과 욕심, 불평과 애정이 묘하게 섞여 있습니다.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장면이 자연스러운 이유도 초랭이가 일방적으로 주인을 받드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일 겁니다. 오랫동안 함께 봉인돼 있었고 서로의 허세와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죠. 전우치가 멋진 자세를 잡을 때 초랭이는 그 뒤에 숨은 허술함을 가장 먼저 알아봅니다.

도술은 힘보다 보여주기 위한 몸짓에 가까웠습니다
전우치의 도술 장면은 싸움인데도 공연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부적을 꺼내고 주문을 외우며 공간을 가볍게 뒤집는 움직임에는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의식이 들어 있어요. 적을 쓰러뜨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어떻게 등장하고 어떤 표정으로 끝낼지도 중요해 보입니다.
그래서 전우치의 액션은 목숨을 걸고 버티는 전투보다 한바탕 재주를 펼치는 놀이처럼 느껴집니다. 상대를 이기는 순간보다 주변 사람들이 놀라는 표정을 확인할 때 더 즐거워하는 듯하죠. 그의 도술에는 세상을 지키려는 사명감보다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려는 마음이 먼저 담겨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가벼움 때문에 영화 속 위험도 크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요괴가 나타나도 전우치가 결국 재치 있게 해결할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화담의 정체와 욕망이 드러난 뒤부터 같은 도술도 전혀 다른 힘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김윤석이 연기한 화담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전우치를 눌러버립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마음이 너무 단단해서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살필 필요조차 없어 보이죠. 전우치가 사람들의 박수와 감탄을 원한다면 화담은 상대의 복종을 원합니다.
둘 다 뛰어난 힘을 가졌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전우치는 관심을 받고 싶어 사람들 앞으로 나서고, 화담은 다른 사람을 자기 뜻에 맞게 움직이려 하죠. 한쪽은 철이 없고 다른 한쪽은 지나치게 차갑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싸움은 누가 더 강한 도술을 쓰느냐보다, 힘을 가진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가까워 보였어요. 전우치의 허세는 주변을 피곤하게 만들지만 화담의 확신은 다른 사람의 선택 자체를 지워버립니다. 전우치가 아직 성장할 여지가 있는 인물로 보이는 이유도 그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서인경 앞에서는 천하제일 도사도 반응을 기다렸습니다
임수정이 연기한 서인경을 만날 때 전우치는 가장 쉽게 흐트러집니다. 조선에서 만났던 여인을 떠올리게 하는 얼굴을 쫓으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도 잠시 잊어버리죠. 처음에는 두 사람의 관계가 요괴를 쫓는 이야기 옆에 붙은 가벼운 곁가지처럼 느껴졌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서인경은 전우치가 도술로 완전히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몇 안 되는 사람입니다. 전우치는 능력으로 사람을 놀라게 하고 눈앞의 상황을 바꿀 수는 있지만, 상대가 자신에게 원하는 반응을 보이게 만들 수는 없어요.
서인경은 전우치가 기대하는 대로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가 멋진 자세를 잡아도 다른 곳에 관심을 보이고, 전우치를 믿는 듯하다가도 자신의 호기심과 욕망을 따라갑니다. 전우치의 도술을 두려워하기보다 흥미로운 구경거리처럼 받아들이기도 하죠.
그 앞에서만큼은 전우치도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도사처럼 행동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어떻게 보였는지 확인하고, 서인경의 표정을 살피며, 원하는 대답이 돌아오기를 기다려요. 사람들의 환호에는 익숙하지만 한 사람의 마음 앞에서는 평범하게 초조해지는 인물이 됩니다.
다만 두 사람의 관계는 깊은 감정으로 충분히 이어지기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이야기 안에서 장난스럽게 지나가는 부분도 많습니다. 서인경 역시 전우치의 성장을 위한 인물로만 머무는 순간이 있어 조금 아쉬웠어요. 그래도 전우치가 자기 능력으로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전우치는 자기 성격을 버리지 않고 조금 달라졌습니다
후반으로 갈수록 전우치는 이전처럼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서만 움직일 수 없게 됩니다. 스승의 죽음과 자신이 봉인된 이유, 화담이 감추고 있던 욕망을 마주하면서 끝까지 책임져야 할 일이 생기죠.
처음의 전우치라면 위험한 상황에서도 도술을 자랑할 기회를 먼저 찾았을 겁니다. 하지만 화담과 맞서는 동안에는 자신이 얼마나 멋있게 보이는지보다 누가 다치고 무엇을 막아야 하는지가 조금씩 중요해져요. 누군가의 칭찬을 듣기 위한 싸움에서 자신이 시작한 일을 마무리하기 위한 싸움으로 방향이 달라집니다.
그렇다고 전우치가 갑자기 근엄하고 반듯한 영웅으로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허세를 부리고 초랭이와 다투며, 위험한 순간에도 농담할 틈을 찾죠. 자기 성격을 모두 버린 뒤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성격으로 전보다 조금 나은 선택을 합니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사람은 큰 사건을 겪었다고 갑자기 완성된 어른이 되지는 않으니까요. 전우치는 여전히 박수를 좋아하고 심심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재미 때문에 다른 사람이 위험해지는 순간에는 이전처럼 웃고만 있지 않습니다.

완성된 도사가 되지 않아서 더 전우치다웠습니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답게 장면은 빠르게 넘어가고 인물들은 심각한 상황에서도 말을 멈추지 않습니다. 조선과 현대, 그림족자 안과 서울의 거리가 뒤섞이지만 전우치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야기의 중심도 금방 다시 잡히죠.
복잡한 설정을 차근차근 이해하려 하기보다 전우치와 초랭이를 따라 뛰어다니는 쪽이 영화와 더 잘 어울렸습니다. 장면이 바뀌고 공간이 뒤집힐 때마다 전우치 역시 새로운 놀이를 발견한 사람처럼 움직이기 때문이에요.
다시 보고 나서도 전우치가 진정한 영웅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큰 위기를 막았다고 해서 허세가 사라진 것도 아니고, 세상에 대한 책임을 완전히 받아들였다고 보기도 어렵죠. 앞으로도 칭찬받을 만한 일을 골라 하고, 심심해지면 엉뚱한 사고를 칠 것만 같습니다.
다만 예전과 달리 누군가가 위험해지는 모습을 끝까지 구경만 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려는 마음과 다른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이 이제는 완전히 따로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박수를 받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더라도 결국 누군가를 구한다면, 전우치에게는 그것이 세상을 대하는 방식일지도 모르죠.
마지막에 남은 것은 대단한 도술의 원리보다 전우치가 웃으며 다음 소동을 찾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세상을 구하는 일이 무거운 의무가 아니라 자신이 가장 신나게 잘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에게는 그 방식이 잘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림족자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는데도 조용하고 점잖은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 힘을 책임지는 법을 조금 배웠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는 사람. 그래서 《전우치》의 주인공은 끝까지 완성된 도사라기보다, 힘이 너무 많은 말썽꾸러기처럼 기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