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치는 세상을 구할 때도 박수받고 싶어 했습니다

전우치가 사람들 앞에서 도술을 부릴 때마다 얼굴이 먼저 밝아졌습니다. 누군가를 구했다는 안도감보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곳에 모였다는 즐거움에 가까워 보였죠. 처음 《전우치》를 봤을 때는 강동원이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서울을 뛰어다니는 모습만 기억했습니다. 다시 떠올리니 전우치는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보다, 재미없는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신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더 큰 사람이었습니다. 그 점이 이상하게 밉지 않았어요. 그는 … 더 읽기

엑시트에서 용남과 의주는 번갈아 뒤를 돌아봤습니다

용남이 옥상 문을 열기 위해 건물 바깥으로 몸을 내밀던 장면은 처음 볼 때도 손에 땀이 났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벽을 오르는 기술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가족들의 표정이 먼저 들어왔습니다. 취업도 못 하고 집에서 눈칫밥을 먹던 아들이 아무도 열지 못한 문을 열기 위해 가장 위험한 곳으로 나가고 있었죠. 평소에는 쓸모없다고 여겼던 시간이 갑자기 모두를 살리는 능력으로 바뀐 … 더 읽기

왕과 사는 남자에서 이홍위가 처음 밥을 먹던 저녁

이홍위 앞에 놓인 밥상이 거의 손대지 않은 채 식어가던 장면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왕위를 잃고 영월까지 내려온 아이에게 밥은 하루를 이어가기 위한 일이 아니었겠죠. 살아야 할 이유가 남아 있지 않다는 마음을 가장 조용하게 보여주는 물건처럼 보였어요. 처음 《왕과 사는 남자》를 봤을 때는 이미 알고 있는 단종의 마지막이 언제 다가올지만 생각했습니다. 다시 떠올리니 죽음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 더 읽기

상덕이 흙을 뱉은 순간부터 달라진 파묘의 공기

상덕이 손가락으로 흙을 집어 입에 넣었다가 곧바로 뱉는 장면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무덤을 바라보며 불길하다고 말하는 것보다 그 짧은 행동이 더 이상했어요. 처음 《파묘》를 봤을 때는 곧 벌어질 굿과 관 속에서 나올 존재가 궁금해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김상덕은 땅을 파기 전부터 이미 무언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몸으로 알아챈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의뢰의 규모와 돈, 일정을 … 더 읽기

서울의 봄, 전화벨이 울릴수록 움직이지 못한 사람들

처음 《서울의 봄》을 봤을 때는 전두광의 얼굴만 따라갔습니다. 사람을 몰아붙일 때마다 커지는 목소리, 상대가 물러서는 순간 살짝 올라가는 입꼬리, 이미 판을 장악했다는 듯한 걸음이 너무 강했거든요. 다시 보니 이상하게 전화기 쪽으로 시선이 갔습니다. 누군가는 전화를 걸어 부대를 움직였고, 누군가는 명령을 기다리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죠. 총보다 먼저 사람을 묶어둔 것은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벨과 수화기 너머의 망설임이었습니다. … 더 읽기

기생충의 계단은 누구에게도 같은 방향이 아니었습니다

반지하 창문 앞에서 술에 취한 사람이 비틀거리던 장면은 처음 볼 때 불편한 농담처럼 지나갔습니다. 기우와 기정은 익숙하다는 듯 창밖을 바라보고, 기택은 와이파이 신호가 잡히는 자리를 찾죠. 다시 《기생충》을 보니 그 작은 창문이 자꾸 마음에 걸렸어요. 바깥을 볼 수는 있지만 사람들의 발목과 거리의 먼지가 먼저 들어오는 높이. 김 가족이 세상을 바라보는 위치가 이미 그 안에 담겨 … 더 읽기

극한직업에서 치킨 냄새가 사건보다 먼저 퍼진 이유

치킨 냄새가 골목을 채우기 시작한 뒤부터 마약반 형사들의 얼굴이 조금씩 편안해졌습니다. 범인을 잡으려고 맞은편 건물을 지켜볼 때보다 주문이 밀린 주방 안에서 훨씬 살아 있어 보였죠. 처음 《극한직업》을 봤을 때는 이 엉뚱한 상황이 그저 웃겼습니다. 다시 떠올려보니 웃음 한가운데에는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사람들의 피로가 꽤 오래 눌러앉아 있었어요. 고반장과 장형사, 마형사, 영호, 재훈은 경찰이지만 어디에서도 … 더 읽기

택시운전사, 만섭의 백미러에 광주가 들어온 순간

광주에 들어가기 전까지 만섭에게 중요한 것은 약속된 돈과 서울로 돌아갈 시간이었습니다. 외국인 손님이 왜 그곳에 가려는지, 도로가 왜 막혔는지는 자신과 상관없는 일처럼 넘겼어요. 처음 《택시운전사》를 봤을 때는 그런 태도가 조금 얄밉게 느껴졌습니다. 이번에는 생각이 달랐어요. 어린 딸을 혼자 키우고 밀린 월세를 걱정하는 사람에게 세상은 거창한 정의보다 당장 받아야 할 요금에 가까웠겠죠. 그래서 만섭이 특별한 신념 … 더 읽기

검사외전, 강동원의 능청보다 감옥 안 황정민의 기다림이 더 답답했습니다

《검사외전》은 제 기억 속에서 늘 강동원이 선거 유세장에서 춤추던 가벼운 영화 쪽에 놓여 있었습니다. 황정민이 감옥에서 복수를 설계한다는 줄거리보다, 한치원이 넥타이를 고쳐 매고 검사인 척 문을 통과하는 장면이 먼저 떠올랐죠. 그래서 다시 볼 때도 웃기는 부분부터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가벼움 뒤에서 거의 움직일 수 없는 변재욱의 시간이 이상하게 자꾸 걸렸어요. 처음에는 그 가벼움이 영화의 … 더 읽기

7번방의 선물, 눈물보다 용구의 억울함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노란색 세일러문 가방이 화면에 보일 때마다 마음이 먼저 불편해졌어요. 처음 《7번방의 선물》을 봤을 때는 그 가방이 용구와 예승을 이어주는 귀여운 소품처럼 느껴졌죠. 이번에는 조금 달랐습니다. 갖고 싶어 하는 딸에게 사주고 싶었던 물건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시작점처럼 보였어요. 예전 기억 속의 《7번방의 선물》은 많이 울었던 영화에 가까웠습니다. 7번방 식구들이 예승을 몰래 …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