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 들어가기 전까지 만섭에게 중요한 것은 약속된 돈과 서울로 돌아갈 시간이었습니다. 외국인 손님이 왜 그곳에 가려는지, 도로가 왜 막혔는지는 자신과 상관없는 일처럼 넘겼어요. 처음 《택시운전사》를 봤을 때는 그런 태도가 조금 얄밉게 느껴졌습니다. 이번에는 생각이 달랐어요. 어린 딸을 혼자 키우고 밀린 월세를 걱정하는 사람에게 세상은 거창한 정의보다 당장 받아야 할 요금에 가까웠겠죠.
그래서 만섭이 특별한 신념 없이 광주에 도착한다는 설정이 더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는 용감한 시민도, 역사를 기록하겠다고 나선 사람도 아니었어요. 길을 잘못 들어선 것처럼 낯선 도시 안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본 얼굴과 소리를 외면하지 못하면서 서울로 돌아가는 길은 처음과 전혀 다른 길이 되죠.
광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만섭이 피터를 사업가라고 둘러대는 장면도 전에는 웃으며 넘겼습니다. 그는 위험을 제대로 알기 전까지 말재주로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다고 믿었죠. 그러나 도시에 가까워질수록 농담은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차창 밖 풍경이 달라지고 길을 막은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질 때, 만섭의 얼굴에서도 익숙한 자신감이 조금씩 빠져나가요. 처음에는 손님을 목적지에 데려다주는 문제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무사히 돌아갈 수 있는지조차 확신하기 어려워집니다.

돈을 세던 사람이 사람을 보기까지
송강호가 연기한 김만섭은 초반에 말이 많습니다. 손님과 실랑이를 하고, 다른 기사들 앞에서 허세를 부리며, 피터가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말로 불평을 늘어놓죠. 그의 말에는 생활의 피로가 묻어 있지만 심각한 일까지 농담으로 밀어내려는 습관도 보입니다. 광주에 도착한 뒤 그 말이 조금씩 줄어드는 과정이 이번에는 유난히 선명했어요.
병원과 거리에서 다친 사람들을 보면서도 만섭은 처음부터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자신이 잘못 본 것은 아닌지, 괜히 위험한 일에 휘말린 것은 아닌지 이유부터 찾으려 하죠. 송강호는 그 변화를 거창한 결심으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입을 다문 채 앞만 바라보거나, 백미러로 뒷좌석의 피터를 확인하는 짧은 시선에 담아내요.
이해보다 당황이 먼저 찾아오고, 당황하면서도 차를 완전히 돌리지 못하는 사람의 얼굴이었습니다. 만섭은 세상의 진실을 단번에 깨달은 인물이 아니라 눈앞의 일을 외면하려다가도 끝내 그러지 못하는 쪽에 가까워요. 그래서 그의 변화가 영웅의 각성보다 평범한 사람의 머뭇거림으로 다가왔습니다.
토마스 크레치만이 연기한 피터는 카메라를 좀처럼 내려놓지 않습니다. 처음 만섭의 눈에는 위험을 자초하는 답답한 외국인처럼 보였을 겁니다. 그러나 피터가 부상자와 군인들 사이에서도 계속 촬영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만섭도 그 행동이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가기 시작하죠.
두 사람은 말이 잘 통하지 않습니다. 서로의 사정도 처음부터 이해하지 못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같은 장면을 보았다는 사실만으로 함께 움직입니다. 피터는 카메라로 기록하고, 만섭은 그 기록이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운전하죠. 말보다 역할이 먼저 두 사람을 같은 방향에 세워놓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함께 본 것
류준열이 연기한 재식은 두 사람 사이의 말을 이어주는 인물입니다. 영어를 할 수 있다는 이유로 피터 곁에 붙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카메라에 담기는 일이 왜 필요한지 이해하기 시작하죠. 재식이 밝게 말을 건넬 때 영화의 공기는 잠시 가벼워지지만 그 시간은 오래 이어지지 않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이후의 사건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 슬픔만 크게 남았습니다. 다시 보니 재식이 피터의 말을 옮기고, 만섭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웃던 평범한 순간들이 더 아팠어요. 비극을 예상하지 못한 채 앞으로의 시간을 당연하게 믿고 있던 얼굴이었기 때문입니다.
유해진이 연기한 황태술도 거창한 말을 하지 않습니다. 서울에서 온 만섭을 챙기고 밥을 내주며, 위험해진 순간에는 다른 택시기사들과 함께 움직이죠. 광주 기사들이 차량으로 길을 열고 만섭과 피터를 돕는 후반부는 영화적으로 강하게 구성된 장면입니다. 현실성을 따지면 과장된 부분이 있지만, 영화가 말하려는 연대의 감정은 분명하게 전달돼요.
이번에는 그 장면을 단순히 영웅적인 활약으로만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기사들은 자신들이 반드시 무사할 것이라는 확신으로 움직인 것이 아닐 겁니다. 눈앞의 차 한 대와 그 안에 탄 사람이라도 빠져나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았다고 영화는 보여주죠. 그래서 차량들이 나란히 달리는 장면은 통쾌하면서도 어딘가 두려웠습니다.
택시는 영화 내내 사람을 태우고 길을 건너는 도구로 등장합니다. 초반의 만섭에게 차는 돈을 벌고 딸에게 돌아가기 위한 생활 수단이었어요. 하지만 광주에 들어온 뒤에는 부상자를 옮기고, 기자의 필름을 실어 나르며, 마지막에는 누군가가 살아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다른 차들과 함께 달립니다.
같은 자동차인데 그 안에 실리는 것이 요금에서 증언으로 달라지는 셈이었죠. 이 변화가 지나치게 계산된 상징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만섭이 먼저 훌륭한 사람이 된 뒤 차의 쓰임이 달라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차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과 그들의 사정이 만섭의 운전을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바꿔놓습니다.

돌아가는 길이 더 이상 같은 길이 아니었습니다
만섭은 한 차례 광주를 빠져나온 뒤 다시 차를 돌립니다. 처음 봤을 때는 이 선택을 주인공이 마침내 용기를 내는 순간으로 받아들였어요. 지금은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갑자기 용감해졌다기보다 이미 본 것을 모른 척한 채 서울로 돌아갈 수 없었던 것에 가까웠죠.
그에게는 기다리는 딸이 있고, 광주에 다시 들어가면 살아서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래서 차를 돌리는 선택이 가볍지 않아요. 두려움을 극복한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두려운 상태에서 돌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옳은 일을 확신해서라기보다 떠나온 사람들의 얼굴을 지울 수 없어서 핸들을 다시 돌린 듯했어요.
후반의 추격은 빠르게 흘러가지만 만섭의 얼굴에는 초반의 능청스러움이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고, 백미러로 피터가 무사한지 확인하면서도 앞길을 놓치지 않죠. 이제 그에게 피터는 돈을 많이 주기로 한 외국인 손님이 아니라 반드시 목적지까지 데려다줘야 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때 두 사람 사이에는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피터는 촬영한 내용을 밖으로 가져가야 하고, 만섭은 그가 살아서 나갈 수 있도록 차를 몰아야 해요. 서로를 완전히 이해했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가 해야 할 일을 놓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함께 움직이는 순간입니다.
영화는 만섭을 처음부터 정의로운 사람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광주에 가게 된 것도 돈 때문이었고, 위험을 목격한 뒤 그곳을 빠져나가려 했던 것도 사실이죠. 그 평범함이 오히려 오래 남았습니다. 누구나 처음부터 옳은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고, 어떤 사람은 상황을 너무 늦게 알아차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알아차린 뒤 무엇을 선택했는지는 남겠죠.
백미러에 남은 사람들의 얼굴
피터를 목적지에 내려준 뒤 만섭은 다시 택시를 몰고 자신의 생활로 돌아갑니다. 거대한 사건을 지나왔다고 해서 그의 삶이 갑자기 달라지는 것은 아니죠. 딸에게 돌아가야 하고, 밀린 월세를 걱정하며, 다시 손님을 태우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이제 백미러에 비치는 사람을 예전처럼 요금으로만 보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광주에 들어가기 전까지 백미러는 손님이 제대로 타고 있는지 확인하는 도구에 가까웠어요. 그곳을 빠져나오는 동안에는 피터의 생사와 뒤에서 쫓아오는 차량, 자신이 두고 온 사람들의 얼굴까지 함께 비추는 공간이 됩니다.
만섭이 광주에서 얻은 것은 세상을 설명할 수 있는 정답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보았는지 알고 있으며, 그 사실을 없던 일처럼 만들 수 없게 된 마음에 가까웠어요. 그는 역사를 기록한 기자도 아니고 직접 싸움에 나선 시민도 아니지만, 기록이 바깥으로 나갈 수 있도록 길을 건넌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약속된 돈을 받기 위해 광주로 향했던 운전이 마지막에는 누군가가 본 것을 세상 밖으로 전달하기 위한 일이 됩니다. 서울로 돌아가는 도로는 광주에 들어올 때와 같은 길이었을지 몰라도 만섭에게는 더 이상 같은 길이 아니었겠죠.
《택시운전사》가 끝난 뒤 오래 남은 것은 빠른 추격이나 차량들이 나란히 달리던 장면만이 아니었습니다. 백미러를 통해 뒤에 앉은 사람을 확인하던 만섭의 짧은 시선이었어요. 처음에는 손님의 요금을 확인하던 눈이었지만, 마지막에는 자신이 끝까지 지켜야 할 사람과 이미 목격한 광주를 함께 바라보는 눈으로 달라져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