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중은 비가 쏟아지는 골목에서 한 남자와 잠깐 마주칩니다. 어두운 밤이었고 상황도 엉망이어서 얼굴을 또렷하게 기억할 만한 만남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칼날과 함께 스쳐간 그 표정이 이상하게 머릿속에 남습니다. 처음 《공공의 적》을 봤을 때는 설경구의 거친 말투와 몸싸움, 조규환의 섬뜩한 얼굴이 먼저 보였습니다. 다시 떠올려보니 이 영화는 좋은 형사가 범인을 찾아내는 이야기라기보다, 좋은 사람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형사가 더 나쁜 사람의 냄새를 끝까지 놓치지 않는 과정에 가까웠습니다.
강철중은 모범적인 경찰과 거리가 멉니다. 사람을 거칠게 다루고 규정보다 자기 방식이 앞서며, 수사보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기기도 합니다. 반면 조규환은 번듯한 직장과 말끔한 옷차림을 갖춘 펀드매니저입니다. 겉으로만 보면 어느 쪽이 사회에 더 필요한 사람인지 판단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영화는 그 판단을 일부러 뒤집으며 제복과 양복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강철중은 좋은 형사가 아니었습니다
설경구가 연기한 강철중은 걸음부터 반듯하지 않습니다. 옷은 늘 구겨져 있고, 피곤함과 짜증을 숨길 생각도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신뢰를 주는 경찰이라기보다 먼저 피하고 싶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수사 과정에서도 정중한 설득보다 윽박지르기와 몸싸움을 선택합니다. 마약을 빼돌리고 금품을 챙기는 모습까지 생각하면 단순히 성격만 거친 경찰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지금 다시 보면 웃음과 통쾌함으로 처리된 그의 폭력적인 행동이 불편하게 다가오는 부분도 분명합니다. 경찰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상대를 위협하고, 자신의 판단이 옳다는 이유로 절차를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조규환이라는 더 악한 인물을 내세웠다고 해서 강철중의 잘못까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강철중에게는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이 하나 있습니다. 증거가 충분하지 않아도 상대가 무엇을 감추는지 몸으로 먼저 알아차립니다. 비 오는 밤에 자신을 베고 지나간 남자의 얼굴을 정확히 보지 못했는데도 조규환을 만나는 순간 불편함을 느낍니다. 논리적인 추리라기보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거짓말과 비겁함을 가까이서 본 형사의 감각에 가깝습니다.
그 감각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닙니다. 강철중은 자기 의심을 증명하려고 무리하고, 주변 동료들에게도 부담을 줍니다. 조규환을 쫓는 일이 형사로서의 책임인지 개인적인 오기인지 경계가 흐려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를 깔끔한 영웅이라고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아무도 심각하게 보지 않는 얼굴을 혼자 계속 기억했다는 점이 사건을 앞으로 움직입니다.
강신일이 연기한 엄충일 반장은 그런 강철중 옆에서 현실적인 균형을 잡아줍니다.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강철중을 말리면서도 그의 의심을 완전히 외면하지는 않습니다. 강철중 혼자였다면 집착으로 끝났을 의심이 동료들의 확인과 수사를 거치며 조금씩 사건의 모양을 갖춥니다. 영화가 결국 한 형사의 직감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지 않는 점도 좋았습니다.

조규환은 너무 멀쩡해서 더 위험했습니다
이성재가 연기한 조규환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상대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직장에서는 능력 있는 펀드매니저로 보이고, 옷차림과 말투에도 흐트러짐이 거의 없습니다. 부모 앞에서도 감정을 정리한 얼굴을 유지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욕망을 방해한다고 느끼는 순간 사람을 관계가 아니라 제거해야 할 장애물로 바라봅니다.
조규환은 거액의 투자 수익을 기다리고 있지만, 그의 아버지는 어려움에 놓인 고아원을 돕기 위해 투자금을 회수하려 합니다. 조규환에게 부모의 뜻은 이해하거나 설득해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의 계획을 망가뜨리는 방해로만 받아들입니다. 돈을 대하는 태도보다 더 무서운 것은 가장 가까운 사람까지 손익 계산 안에 넣는 마음입니다.
조규환이 무서운 이유는 처음부터 악인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리에서 소리치는 사람도 아니고, 험한 인상을 가진 범죄자도 아닙니다. 성공과 예의를 갖춘 얼굴로 살아가면서 자기 부모까지 이익의 계산 안에 넣습니다. 강철중이 지저분한 겉모습 안에 최소한의 선을 남겨둔 사람이라면, 조규환은 반듯한 겉모습 안에서 그 선을 이미 지워버린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두 사람의 대비는 다소 과장됐지만 분명합니다. 강철중은 욕을 하고 주먹을 쓰며 자신이 맡은 직업까지 더럽히지만, 사람의 죽음 앞에서는 화를 냅니다. 조규환은 예의 바르게 말하면서도 사람의 목숨을 자기 계획보다 가볍게 여깁니다. 영화가 말하는 공공의 적은 사회가 겉모습만으로 쉽게 골라낼 수 있는 흉악한 얼굴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멀쩡해서 의심받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성재는 조규환을 크게 흥분하는 악당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얼굴 근육을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상대를 바라보고, 감정이 드러나는 순간도 오래 끌지 않습니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폭력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가는 태도가 더 차갑게 남습니다. 설경구의 넘치는 움직임과 이성재의 정지된 표정이 맞붙을수록 두 사람의 차이가 또렷해집니다.

강철중을 움직인 것은 정의감만이 아니었습니다
강철중이 조규환을 포기하지 않는 데에는 형사로서의 책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 오는 밤에 자신을 베고 지나간 사람을 놓쳤다는 자존심도 있고, 조규환이 끝까지 자신을 우습게 본다는 모욕감도 섞여 있습니다. 자신과 함께 비리를 저질렀던 동료의 죽음까지 겹치면서 그의 감정은 더욱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강철중의 추적은 정의롭기만 하지 않고 지극히 개인적입니다. 조규환을 잡아야 자신이 형사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오기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불순한 감정 때문에 강철중이라는 인물이 살아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처음부터 정의를 위해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 자신보다 더 나쁜 인간을 만나면서 뒤늦게 형사의 역할을 붙잡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강철중은 증거가 부족하다는 벽과 계속 부딪힙니다. 자신은 범인을 안다고 믿지만, 안다는 느낌만으로 사람을 잡을 수는 없습니다. 그가 답답해하는 장면에서는 직감과 절차 사이의 거리가 드러납니다. 경찰이 누군가를 의심할 수는 있어도 그 의심을 사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확인과 증거가 필요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대결은 세련된 수사극의 결말이라기보다 두 사람의 성질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싸움에 가깝습니다. 강철중은 끝까지 몸으로 달려들고, 조규환은 마지막까지 자신이 더 우월하다고 믿습니다. 통쾌함은 있지만 폭력이 모든 답을 대신하는 듯한 마무리는 지금 보면 거칠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강철중이 왜 멈출 수 없었는지는 충분히 이해됩니다.
《공공의 적》은 경찰을 깨끗한 정의의 상징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강철중은 사건을 해결한 뒤에도 갑자기 반듯한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그의 무례함과 폭력성, 제멋대로인 태도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사람을 죽이고도 멀쩡한 얼굴로 살아가는 이를 그대로 지나치지 못하는 마지막 선은 남아 있습니다.
처음에는 강철중과 조규환 중 누가 더 거칠고 무서운지를 보는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보면 두 사람의 차이는 폭력의 크기보다 사람을 대하는 마음에 있었습니다. 강철중은 엉망인 방식으로라도 죽은 사람의 억울함을 붙잡았고, 조규환은 가장 가까운 사람까지 자기 욕망을 방해하는 물건처럼 취급했습니다.
그래서 비 오는 밤의 짧은 만남이 오래 남습니다. 강철중은 그날 조규환의 얼굴을 완벽하게 보지 못했지만, 자신이 느낀 불쾌함을 모른 척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형사는 아니었지만 그 한 가지 때문에 끝까지 형사로 남을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공공의 적》에서 강철중을 움직인 것은 거창하고 깨끗한 정의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을 죽이고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았던 고집이었습니다. 조규환을 쫓는 동안 그는 좋은 사람이 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자신이 어떤 인간까지 외면해서는 안 되는지는 알게 됐습니다.